공연리뷰

쉽게 단언하지 못할 그의 음악, 베이루트

일시: 2012년 1월 25일 PM 8시, 장소: AX-KOREA

작년 말, 2012년 새 다이어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빨간 날들이 평일에 무사히 배치되어 있는가를 확인한 것, 그리고 연초 내한이 예정되어 있던 뮤지션들의 공연 날짜를 체크 해 두는 것이었다. 내한 공연 팀 명을 적은 심플한 메모들 사이에 커다란 별표 하나를 더 붙여 두었던 1월 25일은 Beirut(베이루트) 내한 공연 날. 공연 광고 문구대로라면 2012년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으로 남을 날이 되겠다.




Beirut(베이루트)는 올해 스물 다섯 살이 된 미국 청년 잭 콘돈(Zack Condon)이 프론트 맨으로 있는 인디 밴드다. 사실 Beirut(베이루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Beirut(베이루트)의 음악을 먼저 듣고 프로필을 확인하면 놀란다. 두 번 놀란다. 출신에서 한 번, 나이에서 또 한 번. 본인은 홍대의 한 묘한 분위기의 1인 미용실에서 퍼머를 할 때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는데, 아스트랄하게 꾸며진 낯선 미용실에서 들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음악에 단박에 매료되어 밴드 명을 물어본 후 곧장 집에 돌아와 열혈 Youtube 검색을 했던 기억이 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기본 밴드 구성이 아닌 우쿨렐레, 아코디언, 호른, 트럼펫 등의 관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생경한 사운드에 분명 월드뮤직 뮤지션이겠거니 했던 추측이 철저히 빗나가면서 더욱 호감을 갖게 된 바로 그 밴드!




게스트였던 못(Mot)이이언(eAeon) 공연이 끝나고, 30분 정도의 세팅 시간이 지나자 "굿 이브닝, 코리아!"를 외치며 Beirut(베이루트)가 무대에 등장했다. 총 6명의 멤버가 각각의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고 첫 곡 'Scenic World'를 연주했다. 그 어떤 무대 효과도 없는 아늑하고 심플한 공연장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호른, 플루겔호른, 프렌치혼 등의 악기 소리가 공연장 빈틈을 꽉꽉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잭 콘돈의 목소리. 스피커로만 통해 듣던 그의 목소리는 커다란 악기 사운드를 뚫고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 그간 들어왔던 것보다 훨씬 풍부했다.

남자 목소리가 굵으면서 미성인 경우는 참 드문데, 잭의 경우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그의 자유분방함과 나이브한 감성이 날것으로 더해져 라이브에선 더욱 매력적으로 들렸다. 'The Shrew', 'Nantes'같은 곡에서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거나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는데, 동그랗게 모여 캉캉춤만 추지 않았을 뿐 이색적인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여긴 어디, 난 누구?! 여튼 한국의 서울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도 발칸반도의 어디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때 아닌 경사가 생겨 낭만유랑악단을 초대해 한껏 잔치를 열고 있는 마을의 공기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




우쿨렐레 연주로 진행되는 'Elephant Gun'이나 'Postcards From Italy'같은 곡은 바닷가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고 산뜻하게 따라 부르게 되는 'Vagabond'라던가 'East Harlem', 'A Sunday Smile'은 양이 뒹구는 한가로운 들판이다. 'Goshen''After The Curtain'은 오로라가 지나가는 창 밖이 보이는 훈훈한 방 안이다. 프린트 없는 심플한 카키색 니트와 셔츠의 목 아래까지 단추를 꼭꼭 채워 입은 반듯한 이 청년들이 전해주는 감성은 공연 내내 어딘가 특별한 장소로 데려다 주었다. 그 어떤 밴드 공연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따뜻한 정서와, 낭만, 포근함 같은 게 진하게 느껴졌다. 열 다섯살 때의 나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연예인 얘기나 하며 수다 떠는 게 전부였거늘, 잭 콘돈은 그 때의 나이에 (학교는 때려 치고!) 이미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이런 정서들을 모으고 흡수하고 뱉어냈던 것이다. 신비로운 예술가의 탄생은 애초에 많이 다르긴 다른가 보다.




마지막 곡으로 자신의 고향에 대한 노래라는 소개와 함께 'Santa Fe'를 연주했고, 3분 정도의 애간장 타임이 있은 후 앵콜 무대가 이어졌다. 그들은 공연 중 이뤄지는 그 흔한 멤버 소개조차 없이 깔끔하게 다섯 곡을 더 부른 뒤 유유히 퇴장했다. 군더더기 없이 간단 명료하게, 우리가 전할 이야기는 이렇게 딱 한 줄! 이라는 듯 거의 논스톱 메들리로 이어졌던 공연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1시간 조금 넘은 공연 시간이 더없이 짧게 느껴져셔 공연 후 내내 아쉬움에 사무쳐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무려 19곡이나 연주 했더라. 해야 할 말만 따뜻하고 다정하고 심플하게. 그러나 그 안에서 건져 올린 감정은 참으로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마음 속 어딘가 꽁꽁 숨겨져 있던 자유로움이 연신 팔딱팔딱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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